양평군 친환경 농업

<기획-우수농업경영체5>서종 잣, 개울가농원 박붕희 대표

양평농업 2007. 4. 10. 02:29

<기획-우수농업경영체5>서종 잣, 개울가농원 박붕희 대표
  2007년 04월 06일    HIT : 99

 

 

 

“양평 서종잣은 울창한 잣나무 숲에서 생산되는 순수 천연식품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과 푸른 숲, 북한강이 도도히 흐르는 양평군 서종면 정배리에 잣 농장을 경영하는 개울가농원 대표 박붕희씨(51).

 

박 대표는 200㏊에 달하는 잣나무 숲에서 그 옛날 전통방식으로 잣을 따고 탈각, 내피제거, 진공캔 포장에 이르기까지 생산과 가공, 판매 등 3박자가 완벽하게 구비된 벤처농업인으로 통한다.

 

◇농사의 거듭된 실패

개울가농장이 위치한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정배리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청소년기에 서울에 진출, 조그한 회사에 다녔으나 당시 3천원이라는 봉급으로는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다.

 

돈을 벌면 학원을 다녀서라도 못배운 한을 풀어보려 했으나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도 힘든 탓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만큼 고향에 가서 무엇인들 못하랴” 라고 생각했던 박 대표는 고향에서 농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농사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80년대 초반, 박 대표는 귀향하자 마자 돼지 등 가축을 길렀고, 벼농사, 채소농사를 시작했다.

 

또 채소농가에게 밭떼기로 대량구매하는 등 유통에도 손을 댔다가 가격폭락 사태와 상품성 저하 등으로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다.

“주먹구구식 경영방식으로 나섰다가 1천만원이라는 빚을 졌고 당시에는 적잖은 금액이었다” 는 박 대표는 한동안 농사에 대한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졌었다.

 

“친구집을 전전하며 1년 이상을 그냥 놀았죠. 일종의 방랑생활이기도 했고요”

박 대표는 ”다시 성실한 농사꾼으로 정신을 차리게 해 준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고 말한다.

방랑시기인 82년 제주도에 우연히 갔다가 지금의 아내 고순례씨(47)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박 대표는 결혼 직후 제주도에서 처가살이로 지냈지만 사업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박 대표는 제주도에서 2만평 규모의 벼농사와 배추, 참깨, 특수작물 재배에 나서면서 재기를 노렸다.

85년 가족과 함께 또다시 고향인 양평으로 귀향하게 된 박 대표는 아주 오랜전부터 마을을 둘러싼 야산에 잣이 많이 생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잣 생산은 농업의 새로운 시도

“처음엔 완전 보따리 장수였죠. 나무에 기어 올라가 잣을 따고 잣을 골라낸 뒤 껍질을 까지 않은 ‘피잣’ 상태로 서울 창신동 등의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한 거지요”

 

박 대표는 당시 연 600만원 정도의 이익을 냈다고 한다.

채산성이 괜찮고 고소득 농업이라고 판단한 박 대표는 “어떻게 잣 사업을 확대해 볼까” 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보따리 장사에 나서면서 서울 창신동 시장의 잣가공 공장에서 가공과정을 곁눈질로 배웠다.

 

85년말 2천만원을 들여 잣까는 기계를 샀다.

이때부터 송이잣에서 잣을 추출하고 과피, 탈각작업이 병행됐다.

피잣 판매에서 다 깐 상태의 ‘실백’ 을 생산하면서 잣사업은 서서히 규모가 커졌다.

또 농한기에는 호두, 은행, 산두릅 등의 생산에도 손을 댓고 농번기에는 2만평 규모의 벼농사와 배추, 고추, 콩 등의 농사를 지었다.

 

심지어는 3천평여평의 산을 불태워 화전까지도 일궜다.

박 대표는 한시도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땐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말 그대로 죽기살기로 덤볐던 것 같아요”

 

◇경운기 사고로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

재기의 가능성이 엿보일 쯤 박 대표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뼈아픈 사고가 있었다.

88년 모내기를 위해 로타리를 친 직후 초저녁때였다.

잣나무밭에서 경운기를 몰던 박 대표는 비탈길에서 경운기가 쓰러지면서 경운기와 잣나무 사이에 자신의 몸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누구도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서 박 대표는 정신을 잃었고 5시간만인 이날 밤 10시쯤 가족과 이웃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는 어깨가 마비된 채 갈비뼈 3개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석달이 넘도록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왼쪽팔을 지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쟁애3급의 판정을 받아야 했다.

 

박 대표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져요. 병원에선 퇴원을 만류하며 팔을 전혀 쓰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랬지만 현재는 왼쪽팔에 힘을 제대로 못주는 등 정상 기능을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는 반응이다.

 

부인 고씨는 박 대표에 대해 “남편을 발견했을 때는 정말 죽은줄 알았어요. 병원에서 퇴원을 만류하는데도 벌려놓은 농사일이 많아 퇴원을 강행하는 사람” 이라며 “퇴원하자 마자 왼팔을 붕대로 고정시킨 채 밀린 농사일에 나섰을 정도로 억척스러웠다” 고 말한다.

 

◇잣 가공 벤처농업의 선두, 개울가농원의 탄생

89년 양평군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하는 농촌여성 일감갖기 시범사업에 선정돼 개울가농원은 군의 지원을 처음 받게 된다.

95년 서종면 정배리 자신의 집터안에 100여평의 공장을 건립한 박 대표는 잣까는 기계도 새로 구입하고 잣탈곡기, 선별기, 속피제거기, 건조기, 살균기, 진공포장기 등도 마련했다.

 

군이 저온저장고를 지원해 주면서 개울가농원은 잣 생산과 가공 등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춘 벤처농원으로 탈바꿈된 셈이다.

이 기계설비는 지난 2006년 서종면 문호리에 판매장과 제2농장, 노후설비 교체를 이루기까지 개울가농원의 발전과 함께 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중국산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품질에서는 국산 잣이 월등한 평가를 받으면서도 당시 인건비의 급상승과 맞물려 중국산과의 가격경쟁력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임산물 가공판매 사업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96년부터는 200㏊에 달하는 잣나무 밭에 간벌을 통한 간벌목 장사는 물론, 간벌된 곳에는 더덕과 장뇌삼을 심었다.

자연상태로 방치한 더덕과 장뇌삼은 2002년 첫 수확을 거뒀지만, 일반인과 나물캐는 사람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도난을 당하기도 했다.

 

2000년부터 울타리를 치고 푯말을 붙여 임야 관리에 나서면서 매년 수십 ㏊에 심은 더덕과 장뇌삼은 또다른 개울가농원의 수입원으로 자리잡았다.

수확 첫해 200kg에 불과하던 더덕과 장뇌삼은 지난해 1천300kg를 수확할만큼 규모와 공급물량이 확대됐다.

잣나무 숲에 대한 관리와 경영이 결국 다양한 임산물 사업으로 연계됐고 1석2조의 효과도 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개울가농원은 서종면 정배리에 1천여평의 제1공장 부지에서 탈곡과 저장이 이뤄지고 건물 110평과 500평 규모의 제2공장에서는 탈각, 판매, 포장 등이 이뤄지고 있다.

잣은 비타민(A,D,E,F,K)과 19종의 미네랄, 12종의 단백질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칼로리가 높고 철, 인이 다량 함유된 종합 영양식품으로 올래산, 리놀산 등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혈압을 낮춰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개울가농원의 급성장

박 대표는 “개울가농원이 자리를 잡고 판매처를 확보하는 시점에서는 하루 4시간의 수면이 전부였다” 고 회상한다.

또 같은 품질이라도 어떻게 상품화하고 판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99년 수백만원을 들여 포장과 관련된 디자인을 개발했고 우체국쇼핑은 주 판매전략으로 다가왔다.

 

“우체국쇼핑 입점을 위한 심사에서 합격한 뒤 이때부터 판매량이 밀려오기 시작하더군요. 하루에 수백건의 주문이 들어왔고, 전화가 불이날 정도였지요”

당시 “밤을 새워 일을 해도 힘들줄 몰랐다” 는 박 대표는 추석명절을 앞두고 10일 판매한 매출이 1억3천만원에 달할 정도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박 대표는 “당시 그동안 어려웠던 모든 고난과 피로가 다 씻기는 듯 했지요. 피땀 흘린 보람이었어요” 라고 말한다.

박 대표는 96년 11월 경기도 농업인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98년 임업후계자 선정됐고 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농림부으로부터 우수농산물로 인정도 받았다.

2006년 장뇌삼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친환경농산물로 인증을 받기도 했다.

 

개울가농원에서 판매되는 ‘양평 서종잣’ 매출은 4~5억원 수준이다.

박 대표는 “잣 따는 것은 나무에 사람이 올라가서 따야하는 만큼 전문인력의 확보가 가장 큰 관건” 이라며 “지난 2002년 헬기를 이용해 잣을 따보기도 했으나 평소 인건비 지출규모가 상당한 것이 흠” 이라고 말했다.

 

 

◇개울가농원 박붕희 대표 인터뷰

“지금 생각하면 어려운 시기도 많았지만, 그 어려운 통과의례가 지금 개울가농원의 존재를 말해 주는 것이겠지요”

개울가농원 박붕희 대표는 아직도 은행빚이 수억원에 달한다.

초기 서툰 기계조작과 작업과정 때문에 실백(깐잣)이 부서지고 손상을 입는 등 상품성이 떨어져 헐값에 판 경험만도 수십번이다.

 

“결국 경험이 말해주더라구요” 라며 웃음을 짓는 그의 표정에서 삶의 점철된 노력과 회한이 느껴진다.

박 대표는 “우체국쇼핑은 개울가농원이 전국에 판매할 수 있는 판매처 확보를 원할히 해줬지만, 우체국에서도 우리 서종잣을 최고로 알아줍니다” 라고 말한다.

 

사업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 군대 간 아들이 제대하면, 인터넷 등을 활용하는 다양한 판로와 체험농장 등을 개척할 예정이다.

또 지역주민들이 보다 더 참여하고 마을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농촌체험문화를 개발, 마을이 공동으로 상생하는 벤처농업인으로 우뚝 서는 것이 꿈이기도 하다.

 

특히 박 대표는 지난해초 구입한 자동화시스템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전에는 사람이 소량 캔에 담아 저울에 계근한 뒤 진공포장지에 각각 넣어 포장했지만, 자동화시스템 덕분에 잣 흡입기에 잣을 부어만 주면 흡입기를 통해 계근이 되고 자동으로 포장과 인쇄가 마무리 된다” 는 설명이다.

 

140g짜리 소량 캔이 1분에 38개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적, 시간적, 관리적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박 대표는 양평군의 75%가 임야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산림은 무한한 농가소득원이 잠재된 공간” 이라는 박 대표는 “잣을 생산하기 위해 간벌하는 과정에서 간벌목이 생기고 간벌 후엔 더덕, 장뇌삼 등 임산물이 잘 자라는 효과가 있듯이 산림자원의 효과적 활용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 주장한다.

 

/조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