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부럽지 않은 `게으른 농사꾼` | |
34년 째, 3만 6천 평 논에서 벼농사를 홀로 짓고 있지만, 늘 태평스럽게 사는 게으른 농사꾼이 있습니다. 그는 종자를 소독하지도 않고 논을 갈지도 않으며 심지어, 비료나 농약을 쓰지도 않은 채 농사를 짓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의 논에는 늘 무당벌레, 청개구리, 거미 심지어 진드기, 벼멸구까지 해충과 익충이 시끌벅적하게 함께 살고 있답니다. 이쯤하면 농사를 망칠만도 한데, 신기하게도 6분의 1의 노동력을 들이고도 수확량이 다른 일반적인 농법과 비슷하다는군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 결국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태평농법! 농부 이영문 씨는 우리 땅에 적합한 농사법을 찾기 위해 십 수 년 동안 전국을 돌며 농법을 연구하여 태평농법을 창안해 냈는데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죠. 아래는 12월 21, 22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 출연한 이 세상에서 가장 태평스럽고 게으른 농부 이영문 씨의 인터뷰 전문입니다. ◇ 남들이 늦게 파종하는 방식 때문에 ‘게으르다’, ‘미친 놈’ 소리를 많이 듣기도 ▶ 지금 사시는 곳이 경남 하동군인가요? 네. 경남 하동군 옥정면입니다. 저는 요즘 최근 6년 전부터는 밤에는 하동 옥정에서 살고, 낮에는 사천 서포의 조그만 섬으로 갑니다. ‘별학도’라는 섬입니다. ▶ 그 곳의 겨울 풍경은 어떤가요? 남해안이라서 굉장히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애물 하나도 없이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저 온도가 제가 살고 있는 하동군 옥정보다도 더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겨울이면 아주 칼바람이 부는 곳입니다. 섬이지만 육지와 가깝고 지리산의 골바람을 바로 맞는 곳이기 때문에 춥습니다. 겨울에 추워야만 추운 한국지방에서 재배될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시험이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그 곳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 농촌에서는 지금이 농한기죠?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저 같은 경우는 농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농민들이 농사로 바쁜 철이 저한테는 농한기이고, 다른 사람들이 농한기일 때 저는 상당히 바쁩니다. ▶ 섬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 겁니까? 우선 농업 쪽에서는 우리 것인데도 우리 권리 주장을 못하고 있는 식물들이 참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말씀드리면 ‘샤프란’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지금 수입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 시세가 금보다 비싼 가격인데, 그 샤프란의 이름을 분석해서 찾아 들어가 보면 원산지가 한국인 ‘번홍화’이거든요. 원산지가 한국인 자생식물인데 우리 한국에는 한 포기도 없다는 사실이죠. 학교에서 그런 것을 복원시켜서 내놓지도 않고 순수 내 노력과 내 자본으로 확보해서 그 생태를 자주 와서 보고 배운 사람들한테 무료 분양을 하는 거죠. 또 우리에게는 아예 없었던 기록에도 없던 ‘올리브’와 같은 경우에도 한국에서 자생시험을 하고 있죠. 지금 혹독한 겨울도 보내고 잘 자라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엄청난 에너지가 많습니다. 물이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고, 파도도 있고요. 거기서 전기 에너지를 바꾸는 시험 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죠. ▶ 어떻게 보면 좀 별난 일을 하시는 것도 같은데요. 그래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가 농업만 해도 농업의 전문가라고 하면 나처럼 농사짓는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고, 농업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전문가가 되거든요. 그 박사학위를 외국에서 받다 보니까 이 나라의 농업도 외국의 것을 모방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의 막강한 힘을 이길 수도 없고 나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것은 영영 없어진다는 것, 또는 없어져도 잘 살면 되는데 농민들은 빚에 시달리고 우리 국민의 건강은 나빠지고 하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사명감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겁니다. ▶ 주변의 반대 의견에 시달리지는 않으셨나요? 17-18년 전까지만 해도 협박도 많이 받고 참 많이 괴로웠죠. ▶ 협박까지요? 뭐라고 하던가요? 우선 대표적으로 실례를 들자면, 제 표현이 항상 그렇습니다만 제가 글공부를 많이 안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있는 우장춘 박사를 우상화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을 대단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농사를 짓는 제 입장에서는 그 분이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지금 수박씨, 배추씨, 무씨는 우리 농민들이 안 샀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분이 씨를 없앴다는 거죠. 그것을 마치 발달사처럼 생각했고, 지금 우리는 여러 가지 씨앗을 매년 사야 되는 1회용 씨앗밖에 없거든요. 이런 소리를 하니까 사람들이 다 안 맞다고 하고, 그 중에는 제가 창안한 ‘태평농법’을 통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나오고 했습니다만 아직 역부족이라는 거죠. 그래서 묵묵히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지금 연구하는 농지가 3만4천 평 정도 되시는 건가요? 3만4천 평은 제가 몇 년 전에 농사지어서 소득을 올리기 위해 확보한 논의 규모이고요. 지금 시험하고 있는 땅은 약 1만 평 정도로 지역마다 떨어져 있죠. 그리고 논농사도 그것보다 조금 많아진 것이 아들 둘이 이 농법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논을 더 확보해서 하고 있습니다. ▶ 농사는 어떤 농사를 짓고 있는 거죠? 주곡인 쌀, 보리, 밀 등이죠. ▶ 농사지으시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라는 책을 내셨는데요. ‘게으른 농사꾼’이라는 제목에 어떤 철학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요? 철학적인 것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경남 하동인데, 제가 사천에서 태어나서 하동에서 살면서 농사철 한 철만 보자면 옛날 같으면 장마 오면 전부 물천지인데 지금 가뭄이 가장 심한 5월 달에 모심기를 하다보니까 농민들이 물전쟁이예요. 그런데 저는 쳐다보지도 않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물전쟁을 하고 있을 때 내 논에는 보리나 밀이 자라고 있으니까 물이 필요 없을 때거든요. 그 사람들이 모 다 심고 전쟁이 끝나고 나면 아주 평화로울 때 저는 볍씨만 가지고 가는 거죠. 볍씨를 뿌려놓고 수확만 하니까 다른 사람들 벼는 키가 한참 컸을 때 저는 마른 종자를 뿌리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경상도 말로 ‘태피’라고 해서 ‘태평하다’라고 합니다. 듣는 데서는 ‘태피’라고 하고, 안 듣는 데서는 ‘미친 놈’이라고 하는 거죠. 엄청나게 게을러서 저렇게 하고 있다고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다가 욕처럼 수도 없이 듣다가 나는 게을러도 내 토양속에 있는 식물과 그 식물속의 해충과 익충들이 아주 태평성대를 누린다는 뜻에서 ‘태평농법’이 된 것이고, 절대 게을러서 태평이 아닙니다.(웃음) ◇ 식물과 해충, 미생물 모두 태평성대하게 사는 것이 바로 ‘태평농법’ ▶ 그럼 ‘태평농법’이 도대체 뭔가 싶은데요. 태평농법이라는 것은 공생하는 미생물, 눈에 보이는 지렁이, 무당벌레 등 여러 가지가 똑같이 태평성대를 누리는 농법이라는 뜻입니다. ▶ 그러면 모를 옮겨 심는 과정없이 직접 땅에다 씨를 뿌린다는 건가요? 그렇죠. 우리가 일제시대 전에는 한 집에서 천 석을 지을 수 있는 논마지기를 가지고 있으면 천석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엄청난 많은 면적의 논을 머슴들이 갈았는데, 논두렁 이 있는 자연발생적인 논 상태에서는 천석을 할 수 있는 논을 소를 이용해서 머슴 몇 명이 다 갈 수 없는 겁니다. 그 때는 소와 쟁기의 길이보다 더 적은 논들이 많았고요. 그래서 옛날에는 땅을 갈지 않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것이 일제가 들어오면서 모 심는 방법이 전수가 되었는데, 그렇더라도 우리 토양과 맞게끔 농사를 지었던 겁니다. 예를 들어서 모판을 만들어서 물 좋은 데에서 모를 키우는데, 모판을 만들어서 씨앗을 그 흙 위에 뿌렸거든요. 그런 우리의 농법이 있었고요. 최근의 25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제 기계가 들어오면서 일본 기계에 맞는 모를 키우게 된 거죠. 그러면서 종자를 소독한다는 이유로 물에 담그게 되고 그런 방법들이 마치 관행농법이고 우리 전통 농법이나 태평농법은 아주 원시적인 농법인 것처럼 되다 보니까, 보통 사람들은 쌀이 물에서 크는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태평농법이라는 것을 보면 재배법이 태평농법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식물의 생태라는 거죠. 어떤 씨앗이라도 땅에 떨어져서 잎을 피우는 것이 식물의 생태라는 겁니다. 거기에 맞춰서 땅을 갈지 않고 씨를 그냥 뿌려준다는 것이지 태평농법이라는 것이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일제농법이라도 우리 화강암 토양에 오면 좀 달라야 하는데, 일본의 화산재 토양은 흙속에 안 들어가면 표면에 습이 부족해서 싹이 안 난다는 거죠. 그것을 왜 우리가 따라하냐는 겁니다. ▶ 요즘 유기농 식품이 인기가 많은데요. 태평농업이 유기농 농법과 같은 것인가요? 유기농법이라는 것이 국제 규격화 되어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기체계를 이용한 농법이거든요. 그런데 한국의 유기 농법이라는 것은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 자재로 공급하면 화학비료, 화학농약 쓰지 않으면 유기재배라고 이해를 시켜놨습니다. 그런데 원래 유기농법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태평농법이 미국에서 하고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이냐 하면, 옥수수를 심게 되면 옥수수는 흙 속의 질소를 많이 뽑아 먹습니다. 그러면 다음 해 옥수수를 심으면 질소가 부족해서 잘 안 자라는 거죠. 그래서 태평농법에서는 옥수수를 심고 수확할 때쯤 되면 콩을 심는 거죠. 콩은 공중질소를 만들어서 뿌리를 통해 흙 속에 저장을 하거든요. 그 다음 해에 다시 옥수수를 심는 이것이 바로 유기체계를 이용한 유기농법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유기농법은 똑같은 화학농법에 일제 기계에다가 비료대신 유기농 자재, 퇴비를 쓰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태평농법 농산물과 유기농 농산물을 비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 태평농법으로 농사짓는 분들은 모내기 작업이 없이 볍씨를 직접 땅에 뿌리면 된다는 건가요? 그렇죠. 볍씨를 직접 땅에 뿌리는데 단지 조건이 뿌려진 볍씨를 다시 피복할 수 있는 전작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 전작물이라는 것은 보리, 귀리, 밀, 완두콩, 마늘, 상추 같은 월동을 한 식물의 농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추를 가을에 뿌려서 이듬해 봄에 먹으면 잠이 쏟아지거든요. 상추가 꽃대가 기다랗게 올라오면 그 때쯤 볍씨를 뿌리면 상추의 넓은 잎이 있기 때문에 풀이 없다는 겁니다. 살아있는 식물이 뿌리고 내리고 있었다면 흙 속에는 많은 생물이 있었다는 것이거든요. 그만큼 흙이 부드럽다는 겁니다. 그 다음 벼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상추라든지 보리라든지 이런 짚들이 빛을 차단해놨기 때문에 흙에서 야생초 씨앗이 있더라도 싹이 안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을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안입니다. 가을에 어느 작물이든 파종을 했다가 그것을 수확할 철쯤 되었을 때 볍씨를 파종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옛날 어른들은 가을이 시작점이었습니다. 혼사도 가을에 했고요.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제초제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것은 인간 중심으로 오면서 사람이 판단해서 쓰는 겁니다. 우리는 대자연을 믿고 농사지을 때 가을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옛날에는 화장실의 인분을 가을에 퍼다가 논밭에 뿌리거든요. 아마 봄에 뿌리면 봄비에 유실될 것이고 악취 때문에 그 근처에 사람도 가지도 못할 것이고, 봄에 뿌려 놓으면 그 주변이 온통 풀밭이 될 겁니다. 그런데 가을에 해서 씨를 뿌려놓으면 저처럼 태평농법으로 하면 가을에 볏짚 같은 것이 보리나 밀 씨앗 위에 피복되겠죠. 그 피복도 겨울이라서 충분히 못했다면 다음 날 아침 새벽 일찍 가보면 하나님께서 하얗게 제초제를 뿌려 주십니다. 서리 맞고 안 죽는 풀이 있나요? ▶ 이것이 바로 자연적인 과학영농이다 싶은데요. 그래서 내가 좀 게으르다고 해도 하나님이 매일 일찍 아침에 하얗게 제초제를 뿌려서 풀을 죽여주시니까 내가 뿌려놓은 그 씨앗은 아주 좋은 조건이 되잖아요. 그것을 먹여 자랐을 때 그것이 생명이 끝나는 여름철에 씨앗을 뿌리고 그 피복물로 다시 이용할 때 벼나 수수, 율무 같은 여름 파종하는 식물들은 가을까지 아주 무난하게 잘 넘어갑니다. ▶ 그렇게 함으로써 지력을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우리가 벼라는 것은 물에서 커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벼도 잘 조사해보면 수분 23%이상은 싫어합니다. 단지 100%의 물에서도 죽지 않는 것이 벼의 특징이죠. 그래서 왜 우리가 쌀을 주곡으로 했냐하면 한국의 여름에는 장마가 두 번 있거든요. 7월 장마와 8월 장마죠. 이렇게 여름에는 장마가 많아서 다른 작물은 안 되는 거죠. 그건데 벼는 수분 23% 이상은 싫어하면서도 100%의 수분에서도 견뎌내는 식물이다 보니 쌀을 주곡으로 하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더 인위적으로 물을 더 가져다주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 땅에나 볍씨 파종하고 전작물로 피복을 해놓으면 논밭 개념이 필요 없는 것이죠. ▶ 그럼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었던 건가요? 우리나라는 지리적인 조건에 따라서 농기구가 어떻게 발달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태백산맥의 산을 끼고 있는 농경지의 농업발달사를 보면 쟁기 비슷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너무 논밭들이 작아서 갈기가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조금 크게 만들면 경사지다 보니까 높은 곳을 파서 낮은 곳으로 옮기겠죠. 그러면 높은 곳을 판 곳은 미생물도 없는 생흙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풍화작용 시키기 위해서 사람의 힘으로 너무 힘드니까 쟁기가 발달하게 되고, 대신 반대로 평야지대인 호남 쪽으로 와보면 농업역사에 쟁기가 없고 그냥 씨를 뿌리는 방식입니다. ▶ 그런데 예전에도 보면 ‘벽골제’라고 해서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농사에 물을 이용하지 않았나요? 옛날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물웅덩이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인위적으로 조금 보강한 곳도 있었는데요. 왜 필요했냐 하면 옛날에 있었던 조그만 소류지로는 밑에 있는 농경지를 적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필요했냐 하면 장마가 늦게 올 때 모판이라도 해야할 만큼의 물을 저수하는 곳이죠. 그런 것 때문에 필요했던 것이지 모든 논에 물을 대주기 위한 소류지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해충과 익충의 구분이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벼논에서 벼와 벼멸구를 보자면, 벼에는 벼멸구가 전형적인 해충입니다. 그런데 화학적으로 재배하는 논에서는 벼멸구가 들어가면 벼는 말라 죽습니다. 그런데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논의 벼에는 벼멸구가 가끔 자극을 주면 더 튼튼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벼멸구가 약간 정도는 있어야 거미라든지 무당벌레 등이 먹고 힘을 튼튼하게 키우는 거죠. ◇ 기계를 좋아해서 농기계 수리를 하다가 우리 농사법에 관심 갖게 돼 ▶ 어릴 때 사천에서 자랐다고 하셨는데, 예전에는 그 곳도 외진 곳이었죠? 그렇죠. 사천에서는 제일 지리산에 가까운 방향인 사천 곤명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가 원체 마음씨가 좋은 분이라서 주변의 못사는 친척들을 다 도와주고 살고 계시던 집도 가족이 많은 친척한테 줘버리고 사셨는데요. 저희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좋은 면만 보고 다 남 주는 쪽으로 살다 보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만해도 중학교 때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육성회비가 그렇게 많은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못 내서 그 어린 1학년 때 조회시간에 맨날 불려가서 서있다가 다음 날 또 그것이 무서워서 못가고 하는 그런 시절을 보내다가 혼자서 조금이라도 벌어서 학교를 가야겠다고 중학교를 두 번 들어가서 두 번 다 성공을 못하고 결국 졸업을 못하고 말았습니다. ▶ 그럼 서울에 올라와서 일하신 것은 언제인가요? 나이로서는 중학교 2-3학년 때인데, 많은 사람들이 서울 쪽에 가면 살기가 편하다고 하는 이야기만 들고 무작정 상경이라는 것을 해봤죠. 열차를 타고 서울에 와보니까 구경거리는 많은데 내가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닐 형편은 아니었죠. 그래서 두서너 달 어영부영 다니게 되었죠. 아무데나 가서 밥 먹을 수 있는 곳이면 일을 한다는 심정으로 전전했죠. ▶ 그러다가 아닌 것 같다 생각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신 건가요? 그 때 좋은 회사에서 일을 조금 하다가 그 회사가 어려움이 있어서 다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 어릴 때 꿈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어릴 때 우연치 않게 미군 지프차가 고장이 난 것을 고쳐준 일도 있었어요. ▶ 자전거도 많지 않던 시절인데, 어떻게 고치셨어요? 고장의 원인이 눈에 잘 발견되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또 옛날 시골에 유선 스피커로 방송을 듣는 시절에 그 스피커라든지 여러 가지 기계 쪽을 좋아하고 잘 고쳐서 신동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 그 때 어떤 것을 개발하신 적도 있으신가요? 그 때 농기계도 개발을 많이 했고, 지금도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파도에서 전기를 만드는 장치도 제가 특허를 가지고 있고, 자동차도 앞으로 전기 자동차가 되면 쿠션완충장치를 저의 특허 나와있는 것으로 바꾸면 거기서도 전기가 나오는 장치로 특허를 받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로 개발을 많이 했죠. ▶ 옆에서 지켜보시는 아내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한 15년 전까지만 해도 제 처나 어린 자식들이 불평을 좀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밖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예요. 대신 제가 기계 정비업을 할 때도 전국적으로 많은 기계 수리를 할 것이 밀려왔죠. 기술이 좋았기 때문예요. 그래서 농기계 정비 기능사 자격제도가 있을 때, 그 자격 취득도 하면서 그 이후에 농사 방법이나 개발한 기계의 실용성이 생기니까 최근에는 집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아이들도 제가 개발한 농법이 젊은 사람들이 해도 수월하고 소득이 되니까 아이들도 농사를 짓겠다고 하고요. 또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배우러 오게 되었습니다. ▶ 그럼 이 태평농법과 친해지게 되신 것은 언제쯤인가요? 제가 지금 54세인데요. 좀 일찍부터 농기계를 개발하면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34년 되었습니다. ▶ 그런데 언뜻 태평농법은 기계가 필요없는 농법 아닌가 하고 생각되어지는데요. 수확을 할 때는 기계가 필요합니다. 낫으로 베는 정도로는 소규모 밖에 안되니까요. ▶ 요즘은 다품종 다수확 시대라고 하는데요. 선생님의 방식으로는 소품종 소수확 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를 들어 지금 자라는 아이들한테 딸기가 언제 나오는 과일이냐고 물어보면 겨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품종이 다양한 것이 아니고 나오는 철이 따로 없는 것이죠. 철이 없는 하우스에서 여름작물을 사람들이 먹으면 사람도 철이 없겠죠.(웃음) 그래서 다품종의 경우는 아니고요. 우리 쌀 같은 경우도 원래 우리 쌀, 옛날에 먹던 우리 입맛에 맞는 쌀은 적게 먹어도 에너지가 풍부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먹는 쌀이라는 품종은 많이 먹어도 금방 허기지게 돼서 육고기를 자꾸 먹기 때문에 건강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옛날에 우리가 먹던 그 품종으로 가자는 것이 아니고 토착화될 수 있는 쪽으로 가자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이 식습관이 잘못 되어서 무슨 큰 문제가 발생된 것처럼 제가 표현하게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만, 여름에 주부들이 밥을 할 때 멥쌀 몇 퍼센트에 더하여 찹쌀 몇 퍼센트를 넣어서 밥을 합니다. 그런데 여름에 찹쌀을 먹으면 더위를 어떻게 견딥니까? 우리보다 더 더운 나라에 가면 수저로 밥을 뜰 수 없을 만큼 찰기가 없는 쌀을 쓰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여름을 견뎌내기 위해서 그 쌀을 먹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름에 보리쌀을 먹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베트남과 같은 나라에서는 보리가 재배가 안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여름에 찹쌀을 먹는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는 것만큼 순수 우리 종을 심으면 그럴 필요성이 없는 우리 입맛에 맞는 쌀이 되는 것이죠. ▶ 우리가 ‘토종’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선생님은 그 말도 틀렸다고 하셨던데요. 토종이라는 글자가 아마 우리말이 아닌 한자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야생에 있는 미나리 한 포기를 보고도 ‘토종 미나리’라고 안 하고 ‘돌미나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돌’자가 우리말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 식물에게 가장 큰 생육조건은 일조량이 아닌 ‘밤의 길이’ ▶ 그러면 원시농법대로만 하면 태평농법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그것은 원시농법이라고 하기보다는요. 제가 농업 분야의 전문가들 쪽에 가서 조사해보니까 30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나라의 쌀 재배기술이 선진국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이후 외국의 선진농업을 배운다고 외국으로 나가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쌀 농업이 있어서는 우리 기술이 세계적으로 선진국가이기 때문에 우리 것을 찾고 우리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거죠. ▶ 그런데 태평농법으로 다수확도 가능한가요? 가능하죠.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다품종이라는 것은 자꾸만 외국의 종과 교배를 시키는 것이고요. 예를 들어 A라는 벼를 심어서 이삭 몇 개를 매달아놨다가 내년에 씨로 파종을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것이 씨가 안 되는 겁니다. 씨가 되더라도 2-3년 밖에 안되고요. 그러면 다른 품종으로 가버리는 거죠. 자꾸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니까 다품종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는 우리 단립종인 중립종 쌀, 우리 쌀처럼 생긴 이 품종이 제가 예전에는 817종으로 가지고 있어봤지만 나중에 최종적으로 가보면 2-30종으로 끝난다는 거죠. ▶ 요즘 ‘세계화’가 되면서 음식도 퓨전음식이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돌종’만을 따진다고 하면 시대에 안 맞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것이 세계화될 수는 있는데, 서양의 것이 우리 나라에 와서 마치 선진국 농업이라든지 선진국에서 먹는 식품으로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서양 쪽에서 산삼 또는 인삼을 재배합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재배하는 산삼이나 인삼과는 분명히 질이 떨어지거든요. 우리나라의 토양과 기후가 세계적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더 퇴화되자, 원시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 판단해서 사람이 제일 주인이고 식물들은 전부 주인을 위해서 커주는 것처럼 붕괴하지 말자는 것이죠. 사람이 제일 위의 주인이 되려면 모든 식물들의 습성을 잘 이해해서 거기에 맞게끔 사람들이 도와주자는 겁니다. 그럴 때가 오히려 선진농업이고, 해외 수출도 가능하고요. 우리가 먹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섭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깜짝 놀란 것이 이런 점입니다. 제가 마늘을 재배해보면 제 아내부터 이웃 사람들까지도 제 마늘 한 쪽 한 뿌리라도 얻어가려고 해요. 주위에 널려 있는 것이 마늘 아닙니까? 특히 남해안 쪽에는 그런데도 왜 제 것을 가져가려고 하느냐 하면 저 큰 것 열 뿌리보다 작은 것 제 한 뿌리만 가져가도 훨씬 오래 먹는다는 거죠. 그런데 마늘을 먹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향과 약성이거든요. 즉, 바꾸어 말하면 약성이 될는지, 영양소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맛, 효능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배 채우려고 먹는 것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마늘 뿌리가 크면 뭐할 겁니까? 향이 약해서 오히려 많이 넣어야 하니까 역한 냄새만 나는 것이죠. ▶ 유기농법으로 키운 농산물들을 보면 벌레도 많이 먹고 크기가 작은 경우도 많은데요. 태평농법으로 키운 농산물도 그렇습니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유기농법이나 여러 가지 브랜드화한 방법이 시중에 많이 나오는데요. 벌레먹은 자국이 많은 배추를 소비자가 샀다고 했을 때 배춧잎을 뜯어서 안에 열어봤을 때 벌레가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벌레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과 태평농법의 배추의 차이가 뭔가 하면, 오히려 태평농법의 경우 어떤 해에는 벌레구멍이 약간 있습니다만, 보통은 벌레구멍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뭔가 하면 식물들 스스로 건강하게 컸을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파종시기라는 겁니다. 배춧잎 수는 김장하는 날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평균 90장입니다. 하루에 한 장씩 크는 겁니다. 그래서 김장하는 날로부터 90일 전에 파종을 하면 됩니다. 여름철에 보면 노랑나비, 흰나비가 날아다니잖아요. 그것이 배cnt잎을 갉아먹는 유충이 성충이 되었다가 나비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김장시기에 맞춰서 90일 전에 파종을 한다고 하면 이 유충이 없을 때거든요. 그래서 벌레의 손상없이 배추가 크는데, 지금은 별로 춥지 않을 때 김장을 하다보니까 오히려 더위가 다 가기 전에 파종을 하게 되는 것이죠. 파종시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지 해충이나 크기는 그 적절한 시기를 찾아주면 문제가 없는 것이죠. ▶ 그러면 그 동안 자연의 순환이나 계절의 순환에 다 역행하면서 산 것 같은데요. 당연하죠.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 이것을 몽땅 뜯어 고치려니까 주변에서 ‘미친 놈’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으셨나보죠? 그래서 태평농법을 설명하기 전에 제가 식물의 생태를 많이 설명하는 것이죠. 가장 쉬운 예가 뭔가 하면, 지금 학문적으로는 식물이 생육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일조량과 생육기간입니다. 몇 일 동안 크는데 햇빛이 얼마나 있어야 하고 온도가 몇 도여야 한다고 정리해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이 정해놓은 수치이고, 자연에서는 어떻게 감지하냐 하면 식물이 얼마만큼 빨리 크느냐, 또는 꽃을 언제 피우느냐 하는 것은 전부 ‘밤’을 감지하는 겁니다. 학문적으로는 햇빛의 양인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밤의 길이를 감지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식물의 생태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결국 같은 것인데요. 자연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보면요. 국화꽃이 가을에 피는 겁니다. 가을에는 야생에도 국화가 많이 있는데, 가을에 농민들이 국화를 재배했다고 하면, 이것은 값이 쌀 겁니다. 그래서 농민들이 생각할 때는 ‘조금 늦게 피워서 크리스마스 때 피워서 교회 앞에 가서 팔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꽃을 안 피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주어야 합니까? 밤새도록 전깃불을 켜주는 겁니다. 그러면 교회에 가져가서 돈을 좀 받아봐야 전기세 주고나면 남는 것이 또 없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태평농법에서 제시하는 대로 이해를 잘 하시면 식물은 밤의 길이를 감지한다고 했으니까 밤새도록 전깃불을 켜주지 말고 밤 11시 돼서 불을 켰다가 밤 1시가 돼서 불을 꺼버리면 식물이 생각할 때는 밤이 토막이 나서 밤시간이 아주 짧다고 생각합니다. 꽃을 일절 안 피우게 되는 것이죠. 지금부터 꽃봉오리가 맺어야 크리스마스 때 딱 맞추겠구나 라고 생각되면 그 때부터 전깃불을 안 켜주면 국화가 생각할 때 ‘갑자기 밤이 길어졌다. 빨리 안 크면 안되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잘 자라게 되는 겁니다. 저는 중학교를 두 번 중퇴한 사람입니다만, 중학교 때 돈도 있고 공부도 잘 해서 나온 사람들은 기껏 잘 해야 사람이 스승인데, 그 때 저는 다른 길로 가서 거대한 자연이 내 스승이 되어 있는 것이죠. “씨눈 제거한 쌀에다 금.인삼.산삼 브랜드 붙이면 뭐합니까?” ◇ 6,7년 동안 농사 실패,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어 ▶ 농촌에서 사시는 게 행복한 것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불편한 걸 못 느끼고 있는데 전에 도시에 살 때는 돈 쓰는 재미로 살잖아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돈 쓸 데가 없어요. 특히 실험하고 있는 섬에는 물론 쓸 돈도 없지만 아무리 돈을 주려고 해도 받을 사람이 없어요. ▶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을 드시나요? 1년에 1,2번 구경이나 할런지 전혀 관심이 없어요.(웃음) ▶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서 태평농법이 탄생했겠죠? 시행착오보다는 왜 그 당시에 진작 포기하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가지 않았나, 후회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농사를 한 두 해 해보고 안 되면 포기를 해야 하는데 6,7년 동안 계속 실패만 했었어요. 처음에 볍씨를 파종했을 때 장마철에는 볍씨가 아주 잘 자랍니다. 거의 성공한 것 같은데 가을철 벼가 알곡을 맺을 때쯤 되면 뒤늦게 컸던 잡초들이 압도적으로 벼를 앞서가는 거예요. 나중에 보면 심은 벼는 없어져버리고 온통 풀뿐이에요. 그래서 87년에는 잡초만 무성한 도깨비 밭이 되어버렸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했죠. ◇ 이막뺑이가 따끈따근하고 나락 크는 게 눈에 빈다 ▶ 그러다가 언제쯤 되니까 이제는 되겠다 싶던가요? 옛날 어르신들한테 비결을 묻기 위해서 많이 찾아다녔어요. 남해 해안마을과 지리산 운봉이라는 마을에 가서 두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늘진 곳에서 어르신들이 놀고 계시면 접근해서 어르신들은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가? 또 부친들은 농사를 어떻게 지었는지 묻게 되는데 관심 있어 하는 젊은이를 대견하다고 여기고 가르쳐주는 분이 있는가 하면 친구 뺏는다고 기분나빠하는 어른이 있어요. 한 어른이 저한테 친절하게 땅을 갈지 않고 씨는 어떻게 뿌렸고,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친구를 뺏긴 할아버님이 나도 경남인데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로 말씀을 하세요. “이막뺑이가 따끈따근하고 나락 크는 게 눈에 빈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신 어른이 이야기를 싹 잊어버린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날씨가 좋으면 벼가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는 말이에요. 내가 몇 년 동안 실패한 원인이 이거였구나, 젊은 내 눈에도 안 보이는데 나이 많은 어른 눈에는 보이는구나, 식물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때 남해에 갈 때 배에 자전거를 싣고 갔는데 그 자전거를 타고 남해 일주를 하는데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자를 사서 벼 포기 사이에 끼어 넣고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1mm도 안자라는 거예요. 햇볕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서 논두렁에 누워서 2시간을 쳐다봐도 마찬가지에요. 나중에는 일사병으로 몸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살아야겠다고 발버둥치다가 저 아래 있는 물이 있는 논으로 떨어졌어요. 젊은 나이니까 노인을 만나면 그냥 안 두려고 아까 계셨던 그늘진 곳으로 갔어요. 그런데 날이 늦은 오후가 돼서 시원해지니까 일하러 가시고 아무도 안 계세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숙제가 생기더라고요. 그 나이 많은 노인의 눈에는 벼가 자라는 게 보이는데 왜 내 눈에는 안 보이는가? 그럼 언제 자라는가 하고 숙제가 남는 거예요. 그래서 나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다니는 걸 그만두고 짐을 챙겨서 하동으로 철수를 했어요. 숙제를 못 푸니까 그날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하루 종일 식물 옆에서 쳐다봐도 자라지 않으니 답은 점점 어려워지는 거죠. 그래서 다른 사람 벼논에 가서 밤에 불을 켜놓고 조사를 했어요. 밤에 자란다는 걸 알았어요. 밤에 자라는데 이 어른은 식물이 밤에 자라도록 조건을 낮에 만들어준다는 걸 알고 계셨던 것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그 어른이 식물은 밤에 자란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결정적인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서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나간 거예요. ▶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이 태평농법이 얼마만큼 호응을 얻고 있는 건가요? 이 나라 농법이 바뀌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농산물이 되는데 지금까지 화학농법을 과학농법이라는 이름으로 세뇌화시켰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겠죠. 그리고 봄부터 풀하고 같이 자라게 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서 이해를 잘 못하고 있어요. ▶ 태평농법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나요?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늘어나고 있고 자급자족하는 농가까지 합하면 500농가 이상이 되고 해외까지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요. ◇ 화학비료 사용 반대에 협박, 해외로 피신까지 ▶ 화학비료를 쓰면 안 된다고 하셨다가 협박도 당하시고 해외로 피신도 하셨다고요? 옛날에 정부가 관리하는 화학비료 공장이 우리나라에 하나 있었는데 제가 그때 농기계제품개선위원회 직책을 맡고 있었어요. 농기계 때문에 전국을 다니면서 두 가지 요인을 발견했어요. 화학비료를 쓰면 부식이 빨리 돼서 농기계가 망가져요. 그리고 토양의 문제도 생기고, 그래서 비료를 쓰면 안 된다고 주장을 하게 되었어요. 나 한 사람 없으면 비료장사 잘 될 텐데, 없애겠다고 협박까지 받았어요. 그래서 일본말도 모르는데 돈도 없이 일본까지 피신을 다녀온 적도 있었죠. ▶ 농촌에서 사용하는 씨앗이 돌종이어야 하고 수입산은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수입산이라서 안 된다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만든 품종이라는 거죠. 동양인들은 고추를 먹어야 혈액순환이 좋아지는데 고추씨를 사서 심으면 잘 익은 고추를 내년에 씨앗용으로 남겨놓았다가 심어보면 올해 있었던 고추처럼 생기는 게 아니고 다양한 고추가 나오는 거예요. 열대지방에서 열리는 손가락 크기만 한, 하늘 쳐다보는 고추도 열리고 이런 건 유전자가 고정되지 않은, 혼종 시켜 놓은 종자라는 거죠. 그래서 유전자를 결합해서 만들다 보니 유전자 변형식품이라고 볼 수 있는 잘못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꼭 돌종을 고집하는 게 아니고 인위적으로 간섭을 하지 않은 씨앗, 고정되어 있는 유전자를 이야기하다 보니까 마치 우리 돌종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 커피재배도 하셨다면서요? 진주와 하동 경계에 땅을 사서 했는데 연간 몇 천 명씩 사람들이 견학을 옵니다. 커피의 특성은 이런 게 있더라 사람들한테 설명해 주니까 그게 커피나무라는 걸 알잖아요. 유일하게 한국에는 이영문한테 가면 커피를 구경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재배를 안 하고 있고 올리브를 재배하고 있어요. 그리고 순수 우리 과일 중에서 사라진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다시 내년에 재개하려고 합니다. ▶ 농사도 하나의 경영인데 같은 면적으로 농사를 짓는 다른 분과 수입은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보통 수확량을 가지고 돈이 된다 안 된다 판단을 하는데 95년도에 설립된 영농법인회사가 있는데 거의 부도 직전에 나한테 떠넘겨 버렸어요. 그래서 빚을 많이 갖고 있었죠. 그런데 나는 태평농법이라는 것을 해왔기 때문에 영농법인회사는 기계를 운영하는 회사인데 농기계를 쓸 필요가 없잖아요. 나는 회사를 운영도 안 하고 놀리면서 빚을 갚아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영농법인회사의 기계를 돌려서 소득을 올리고 재투자를 하면서 빚이 더 늘어나고 나는 기계를 쓰지 않으면서 빚을 갚아가고, 그런 것을 보면 내가 경영하는 게 소득이 높지 않나 생각해요. ▶ 요즘 브랜드 쌀이라고 해서 품종 개발된 것들이 나오는데 태평농법으로도 이런 게 가능할까요? 태평농법에서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쌀이 쌀다워야 하는데 쌀에다 금을 입혀서 금쌀이라는 브랜드로 붙이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쌀은 벼의 씨앗입니다. 씨앗이 갖고 있는 에너지 중에 사람한테 필요한 것은 어떤 식물이든 씨눈입니다. 그런데 시중의 쌀은 100% 씨눈을 제거한 쌀이거든요. 그 잘못된 쌀에다 금이든 인삼이든 산삼이든 코팅을 하면 뭘 합니까? 태평농법은 식물이 갖고 있어야 할 본래의 것, 그걸 다 갖고 있는 것이 태평농산물이에요. 식물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우리가 얼마나 섭취할 것인가 그게 건강함의 비결이죠. ◇ 사람은 주인이 아니야,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 이영문 선생님의 밥상은 어떨지 궁금한데요. 우리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 우리 밥상에 뱀이 나올 것 같아요.” 그 말에 깜짝 놀랐어요. 진짜 밥상에 뱀이 숨어있는 줄 알고, 워낙 채소를 많이 먹으니까 채소 속에 뱀이 숨어있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일어선 거예요. 아이 이야기는 워낙 채소만 있으니까 뱀이 나올까봐 무섭다는 이야기였어요. 몸에 좋으니까 채소를 무조건 먹는 건 아니고 적당하게 채소를 자급자족해서 먹는 거죠. ▶ <사람이 주인이라고 누가 그래요?>라는 책을 최근에 내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사람이 생각할 때 주인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가로수를 보면 사람이 가로수의 주인이라고 특별하게 대접해주는 것처럼 지지대를 세워서 바람 불어도 넘어지지 않도록 해주지만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넘어져 버려요. 그런데 저 해안 쪽 스스로 큰 가로수들은 여기보다 훨씬 키가 큰데도 태풍이 불어도 안 넘어지거든요. 사람이 아무리 주인이라고 주장해도 사람한테 간섭받고 큰 놈은 생명력이 약해요. 그래서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잠시 일부를 빌려서 쓰고 있는 거예요. ▶ 최근에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 등 우리가 자연에게 잘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사람 잘못으로 사고가 났으면 적어도 사람이 주인이라고 기름제거하려고 유화제 뿌리지 말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으라는 겁니다. 자연이 정화할 때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2차적인 큰 문제는 안 오는데 사람이 회복해보겠다고 화학제를 더 갖다 넣고 있잖아요. 이것뿐만 아니라 매립을 할 때도 환경을 파괴하는 거죠. 저도 경실련에서 환경운동을 해봤는데 환경측면에서 매립을 반대한다고 하면 바로 말을 바꿉니다. 친환경적인 매립을 한다고. 대체 친환경적인 매립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 혼자서 쌀농사만으로 연간 억대 매출을 올리신다고 들었어요. 3년 전부터 아들들이 논을 더 확보해서 경작을 하고 있는데 소득은 높아요. 지금은 아버님이 돌아가셨지만 제가 부모님께 땅 한 평 물려받은 것 없이 그 많은 땅을 현금을 벌어서 산 것도 아니고 대출도 받았기 때문에 소득이 없으면 그렇게 할 여력이 없죠. 만약에 농자재, 비료 값, 농약, 농기계 값을 지출한다고 하면 아마도 부도가 나서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 귀농은 ‘자급자족’ 생각이 바뀌어야 해 ▶ 앞으로 식량전쟁, 물 전쟁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귀농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귀농하러 오시는 분들에게는 제가 한참 동안은 냉정하게 대합니다. 왜냐하면 귀농하러 오는 사람들이 한 달 지출비를 얼마로 예상하고 오는가 하면 200만원을 잡고 와요. 시골에서 그 돈이 왜 필요한가, 도시에서야 각종 공과금, 자동차 기름 값 등으로 해서 필요한 돈이라 그 돈을 예상하고 들어오는데 연간 2400만원이 농촌에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계산하고 들어오면 그에 맞는 영농규모를 설명하고 재배법을 설명할 텐데 도시와 똑같은 지출로 계산을 한다고 하면 농촌사람들 화나게 할 일이거든요. ▶ 귀농을 포기하고 되돌아간 사람들도 있나요? 많아요. 땅값에 대한 투자 때문이에요. 도시에서는 직장과 주거생활만 있으면 생활할 수 있지만 농촌에서는 자기가 사장이에요. 땅을 갖고 있으니까요. 도시에서 올 때는 농촌에 빈집, 빈 땅이 많다고 생각하고 내려와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1만원이던 땅도 살 사람이 오면 5만원, 10만원이 되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소득이 나올 만큼 땅을 사려고 하면 투자금액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평당 10만원을 5천 평 정도는 되어야 월 200만원을 쓸 수 있는데 돈이 얼마입니까? 그 정도 돈 있으면 농촌으로 돌아오지 않겠죠. 자급자족 개념으로 자기 몸만 건강하면 살 수 있다는 개념으로 생각이 바뀌면 적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재배법을 가르쳐 줍니다. ▶ 귀농을 할 때 걱정하는 게 자녀교육인데, 아드님들은 어떠세요? 저희 아이들은 다 농업대학을 나왔고 태평농법도 본인들이 하겠다고 해서 합니다. 자식들이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까 저도 남 앞에서 자신 있게 태평농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내 자식도 따라 안 하는 농법을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 자동차, 배도 친환경적인 완제품 선보이고 싶어 ▶ 앞으로 꼭 연구하고 싶으신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한국형 자동차를 만들어서 수출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1대만 만들어 봐도 알 텐데 자동차 업체들이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소형 어선들이 전부 FRP 방식으로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있어요. 구조는 목선구조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무거워요. 물에 떠야 하는 배가 무겁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엄청나게 많아요. 자동차는 배기가스를 안에서 필터로 제거하고 밖으로 내보내는데 작은 선박들은 그런 장치도 없이 바닷물에 내보내요. 그리고 바닷물을 냉각시켜서 뜨거운 물로 바다에 내뿜어요. 그러니 유리섬유를 바다에 희석시켜, 기름에 탄 부산물을 바다에 집어넣어, 또 끓인 물을 바다에 넣어요. 지금까지 여러 대의 배를 시험적으로 만들었는데 한 대라도 어민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배를 제대로 만들어서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식물들뿐만 아니라 자동차, 배도 2,3년 안에 샘플을 만들어서 완제품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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