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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오산면 단산리 신종연(50)씨는 아직도 눈이 하얗게 쌓인 앞산을 바라보며, 새봄이 오기만을 손 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청춘'처럼 봄을 고대하는 것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드릅을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씨는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향긋한 드릅을 세상에 내 놓겠다"며 눈쌓인 드릅밭으로 달려갔다. 신씨가 드릅나무를 접한 것은 이제 만 3년째다. 이곳이 탯자리인 그는 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지키다 10여년전 광주로 삶터를 옮겼다. 그러나 시골의 맑은 공기속에 마냥 청정하게 살던 그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시생활이 낯설기만 했다.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 몸 마저 시름시름 앓게 됐다. 결국 5년만인 지난 1999년 10월 고생만 안겨준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 이른바 귀농한 것이다. 신씨는 이듬해 봄부터 드릅과 인연을 맺었다. 청정채소인데다 수요도 있고, 또 앞으로는 일본에 수출도 가능하다는 기대가 이를 새 삶의 도전으로 선택하게 했다. 마침 곡성군에서도 드릅을 특용작물로 권장하고 있었던 터라 기술을 익히는데도 도움이 됐다. 게다가 그에게는 집에서도 훤히 보이는 2만5천평의 마을 앞산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봄 드릅나무 삽목을 시작했다. 잡목을 베어내고 꺾꽂이한 드릅은 쉽게 활착이 되고 이듬해부터 새싹을 피워냈다. 2001년 첫 수확해서 주위에 전부 선물하고도 150만원어치를 팔았다. 지난해(2002년)에는 4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본격적인 수확은 올해부터 시작된다. 드릅은 3년째부터 소출이 제대로 이뤄진데다 9천평에 심어놓은 5만그루의 나무들도 생육이 양호하다. 지난 3년동안 기술축적도 어느정도 이뤄져 자신이 있고, 판로도 전부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올려보낼 수 있도록 확보됐다. 게다가 옛날에는 드릅의 가격이 생산초기에는 비싸고 이후 급락했지만, 이제는 꾸준한 상황을 보여 더욱 기대를 크게 하고 있다. 이제 신씨는 생산 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판매전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자체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내 얼굴을 내 놓고 팔 수 있는 '나만의 상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때문에 곡성군에서 추진하는 포장디자인사업에 선정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인터넷 전자상거래망을 활용하기 위한 홈페이지 제작 작업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재배와 관련해서는 이제 완전하게 자신감을 갖고 있는 신씨는 목표를 더욱 크게 잡았다. 최소한 5만평 이상으로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꿈'을 펼치려 하고 있다. "상품의 질이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한사람이 대규모로 재배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그는 그래서 '소규모 다재배농민 배출' 시책을 펴고 있는 행정당국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 신씨는 요즘 드릅 뿐만 아니라 표고버섯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 드릅은 일손을 한철에만 필요로하므로 남은 시간을 활용, 표고버섯으로 수익을 쏠쏠히 올리고 있다. 처음 3천본으로 시작했던 표고가 이제는 2만본으로 늘어나는 등 제법 큰 규모로 확장됐다. 그의 표고버섯 하우스는 마을 앞을 하얗게 치장하고 있을 정도다. 광주에서 살면서 시름시름했던 몸도 완전히 회복하는 등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은 신종연씨. "농촌에서 못 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땅은 땀을 흘린만큼 속이지 않고 보상한다"고 강조하며 다시 신발끈을 힘주어 묶었다. 그리곤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하얗게 쌓여 있는 앞산 드릅나무밭으로 달려갔다./곡성투데이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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